1977-9년경의 일이니까 아주 옛날 일이네요.
당시엔 인터넷이 없고 팩스라는 것도 없어서 해외은행과의 거래뿐 아니라
해외점포와의 교신도 주로 텔렉스(Telex)를 이용했답니다.
국제부의 텔렉스 요금이 당시 금액으로도 천만원대(잠실주공1차아파트 13-15평이 3-4백만원정도로 기억됨)가 넘었으니
텔렉스가 얼마나 많이 이용되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물론 텔렉스실(통제구역임)이 따로 있고 직원도 여러 명이 근무했습니다.
텔렉스가 뭐냐고 물으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가입자끼리 연결해 이쪽에서 타이핑하면 상대쪽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시스템입니다.
(맞는 설명인지는 몰라도 대강은 그렇습니다)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텔렉스영어라고 해서 단어를 대폭 압축해서 사용하지요.
예를 들면,
your accont : UR ACCT
and : N
as soon as possible : ASAP
please : PLS
이렇게 압축해 작성한 문서도 텔렉스실에서 다시 타이핑해
테이프(타공된 종이필름 같은건데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음)를 만들었다가
야간에 해외와 연결되면 신속히 테이프를 돌려 발송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몇 번 들여다 본 경험으로 얘기한 것으로 틀릴 수 있음.)
H씨는 입행 2-3년차로 해외점포 관리 및 여신감리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차주, 금액, 여신과목, 신청의견 등 여신승인청서 항목을 미리 정해 놓은 순서로 영문 텔렉스로 오면
승인신청서를 한글로 풀어서 수기로 작성해 심사역께 올리는 일이 주된 일입니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빨리 텔렉스실에 가서 미국 N지점에서 들어온 승인신청서 찾아다
빨리 작성해 올리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그날 오전(10시쯤임)에 이사회인데 이사회 통과까지 해야 한다니 얼마나 급합니까.
이미 관련 임원과 은행장께는 간밤에 현지 지점장이 국제통화로 다 말씀드린 건이고요.
(국제전화는 전화국에 신청해 한참이 지난 후에 연결되고 요금이 엄청 비쌈)
국내 재벌그룹의 현지법인에 Project financing으로 금액이 매우 컸습니다.
급히 텔렉스실에 가보니 수신된 텔렉스가 얼마나 많은지 찾기도 쉽지 않아
멏 사람이 나누어 작업해서 찾아다가 급이 신청서를 작성해
대리->심사역(차장)->부부장->부장님이 거의 보지도 않고 결제하고
부장님이 급히 임원실로 가지고 가셨지요.
점심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실 책임자한테서 전화가 와 금액이 얼마냐고 묻습니다.
그런 건 왜 묻느냐 싶어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왜냐고 물었더니
신청서 신청금액 난에 금액이 적혀있지 않다는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냐고 했더니
직접 와서 보고 동일한 필체로 써 넣으라는 겁니다.
가서 도장과 싸인을 헤아려보니 20개 가까이 되는 데
그 누구도 금액이 빠졌다는 걸 모르고 이사회까지 통과하고
감사실에 넘어가셔야 발견한 겁니다.ㅋㅋㅋ
(되게 혼날 만한 일인데 은행장까지 싸인한 일이어서인지 전혀 혼내지 않음.
급한 일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따르기 쉽습니다.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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